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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영화 택시운전사, 그날 광주의 실체를 알리다

by 인생 영화 2022. 6. 10.

출처 구글 이미지

우리가 몰랐던 광주의 실체

한국 현대사 중에서 광주 민주화 운동은 가히 비극의 절정이라 불러야 할 믿을 수 없는 사건이며, 군부가 도시 하나를 고립시켜놓고 시민을 막무가내로 잔인하게 학살한 희대의 사건입니다. 이 사건을 모르는 국민은 없을 것입니다. 영화 화려한 휴가는 물론이고, 모래시계와 같은 드라마, 영화 꽃잎, 26년, 하물며 박하사탕에서도 광주 민주화 운동 이야기는 크고 작게 언급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많은 작품에서 논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광주는 다루기 까다로운 소재입니다. 자칫 균형을 잃으면 지나친 신파극이 될 수도 있고 너무 나가면 역사를 왜곡하는 히어로물이 될 수도 있으며, 그렇다고 주저하면 광주의 참상을 제대로 전하지 못하는 졸작이 되어버립니다. 

 

조심스럽게, 그리고 완벽하게 다루어야만 광주의 이야기를 제대로 빛나는 작품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한국 현대사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광주 민주화 운동의 이야기를 택시운전사에서는 잘 드러냈는가, 택시운전사는 어떤 영화인가가 중요한 포인트가 될 것입니다.

 

택시운전사는 장점과 단점이 선명하게 갈리는 영화입니다. 비유하자면 잘 그려놓은 그림에, 그림을 전혀 못 그리는 사람이 몇 군데 수정을 해놔서 그 손댄 부분들이 눈에 거슬리는 그런 영화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전반적으로 이야기의 흐름은 유려하고, 장점이 극대화되는 부분에서는 가히 경이로운 느낌을 받을 정도입니다.

심상치 않은 그날의 분위기

택시운전사는 초반부터 쉬운 흐름으로 우리에게 인사합니다. 송강호가 연기한 쾌활한 표정의 김만섭 씨는 친구 집에서 사글세를 살면서 홀로 딸을 키우는 평범한 택시 기사입니다. 아내를 잃고, 벌이도 시원찮지만 그래도 딸 하나 바라보며 열심히 살아가고 나름 영어도 더듬더듬 단어 정도는 말할 줄 아는 서울 사람입니다.

 

딸이 주인집 아들에게 기죽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돈이 필요했던 김만섭씨는 우연히 기사식당에서 주워들은 이야기, 즉 광주를 가려는 외국인이 10만 원이나 주기로 했다는 소리에 서둘러 달려가 그 외국인 손님을 가로챕니다. 이렇게 이야기는 시작되고 가볍고, 경쾌하고, 알기 쉬운 흐름입니다.

 

영화의 앞 부분은 긍정적인 에너지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부분이 좋았습니다. 1980년 5월의 서울은 학생들이 쉬지 않고 데모를 하고 잡혀가곤 해도 택시 기사 김만섭 씨 같은 사람에게는 그저 즐거운 일상입니다. 김만섭 씨는 지식인 계급도 아니고 학생들이 왜 데모를 하는지 잘 이해하지도 못하는 소시민입니다.

 

오히려 전형적인 당시 기성세대의 사고를 보여주는 인물입니다. 저는 이 긍정적이고 밝은 분위기가 좋았습니다. 왜냐면 바로 이 순간에도 광주는 처절하며, 이 영화의 가장 무서운 부분은 오히려 김만섭씨가 평범한 일상을 즐겁게 살아가는 영화의 초반부입니다. 영화에서는 5월 20일에 위르겐 힌츠페터와 광주에 들어가게 되니, 우리가 영화에서 보는 일상은 5월 19일인 셈입니다. 생각해보면 소름 끼치는 장면들입니다.

 

그 시간에도 광주에서는 시위가 벌어지고 계엄군에 의해 시민들이 무참히 목숨을 잃고 있기 때문입니다. 위르겐 힌츠페터의 이야기는 실화입니다.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가장 강력한 힘이기도 합니다. 물론 위르겐 힌츠페터는 혼자서 오지 않았습니다. 헤닝 루모어라는 녹음 담당 기자도 있었습니다. 

 

이 둘을 태운 것이 바로 김만섭씨, 다른 이름은 김사복 씨인 것입니다. 작중 힌츠페터는 독일인 기자이면서 무척 직감이 뛰어나며 지적인 인물로 묘사됩니다. 그러면서 자존심도 있고 성격도 강인합니다. 그렇기에 영어가 서툰 택시기사 김만섭과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자주 보입니다.

 

이 부분은 사실 자칫하면 어색하고 유치해질 수도 있는 부분입니다. 하지만 송강호의 능숙한 연기력이 이를 보안해주며, 송강호가 넉살 좋게 대사를 치는 모습을 보면 왜 이 배우가 이토록 높은 자리에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택시가 서울을 나오고 잠시 힌츠페터가 눈을 붙인 사이 어느덧 택시는 광주에 도착합니다.

 

그리고 이 순간부터 영화는 달라집니다.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영화가 모습을 바꾸기 시작합니다. 모두와 아는 바와 같이 광주는 통제된 상황이었습니다. 어떻게든 둘러대서 검문을 통과한 택시가 광주 시내로 들어가는 장면부터 숨을 쉬기가 어렵습니다.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뛰어난 송강호의 연기

하나는 재현된 광주 시내의 처참하고 쓸쓸한 그 모습때문에, 다른 하나는 송강호 때문입니다. 광주 시내의 분위기는 거의 포스트 아포칼립스물을 떠올리게 합니다. 거리의 황량함과 고요한 정적, 쓸쓸한 분위기는 그야말로 전쟁터에 볼 수 있는 장면입니다. 28일 후의 폐허가 된 런던 시내라거나, 혹은 전쟁 영화에서 시가전의 배경이 되는 도시들과는 또 다른 미묘한 느낌입니다.

 

택시가 광주 시내로 들어가고 송강호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볼 때, 이미 왈칵 눈물이 터지는 소리가 들립니다. 모두가 알고 있기 때문에, 그 참사를 상상할 수 있기 때문에 벌써부터 흐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감독은 여기에서 그 당시의 분위기를 재현하는 데에 힘을 쏟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간접적인 분위기는 세련되고 무엇보다 송강호의 연기가 사람의 마음을 흔듭니다. 이 사람의 연기가 경지에 올랐고 이 영화에서 결코 오버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최대한 자제하고 절제된 연기를 보여줍니다. 김만섭이라는 택시기사로서 광주의 이 끔찍한 참상에 직면되어 있을 때, 그가 보여주는 반응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몰입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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